조선 말기 삼례는 완주의 중심부에서 부패한 탐관오리와 신분 차별에 맞서 죽창을 들었던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가 일어났던 곳이다. 삼례라는 시공간은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감정기의 쌀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체 현재가 되었고, 후대에 남겨줄 위대한 역사가 되었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미디어공동체 ‘삼례사람들’이 탄생했다.
삼례사람들은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2019년 3월에 첫 닻을 올렸다. 순풍이 노 젖는 강태공은 꿈꾸지 않았고 신문을 꾸준히 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한 순간이 많았다.
사람이 중심의 미디어 추구
삼례사람들은 여느 마을신문과 달리 사람 중심의 미디어를 추구하고 있다. 제호도 신문이라는 타이틀 대신 지향하는 바를 내세웠다. 사람들 이야기를 주 테마로 삼다 보니 인터뷰 기사가 메인 꼭지에 실린다. 물론 지역 현안에 대한 기사도 있지만, 인물 취재 기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시형 마을신문처럼 대안 언론 기능보다는 농촌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자연, 생태, 사람, 인물, 소소한 마을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흐름은 다행히 별 탈 없이 호응을 얻고 있어 앞으로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하겠지만 당분간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삼례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성은 지역 학교와 연대를 통한 ‘청소년기자단’을 운영인데 올해 삼례중학교 학생들이 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 주민 참여 행사로 ‘1호선 영화제’를 진행했다.
위기를 극복하여 더욱 단단해진 삼례사람들
삼례사람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출범을 함께한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바뀌는 과정을 통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남아서 상을 치우듯 삼례사람들도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금의 단단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종이 신문 발간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늘 짐이 되었다. 후원 회원 조직도 수월치 않아 운영진 차원에서 신문 발간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결국 재정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 고민의 끝은 인터넷 신문 발간으로 숨을 고르는 일이었다.
종이 신문 발간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현상적으로 보면 인터넷 신문 창간이 그리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탄생한 인터넷 신문 삼례사람들 홈페이지 구축은 9월에 완성되었고 온라인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이 낯설기도 하지만, 앞으로 기사 클릭 수를 높이는 홍보와 SNS 공유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더불어 주민들이 참여하는 각종 사업을 발굴해 삼례미디어공동체가 삼례지역의 공동체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삼례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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